로그인 회원가입
제목
  <신문보도> -크리스챤 신문과의 인터뷰 - 2월 23일자 신문
이름
    작성일 : 2004-02-23 19:45:42  조회 : 1292 
링크1
  http://www.cpress.net/show.asp?kind=14&index=9933

인터뷰 / 양화진 선교사 묘지 ‘알림이’ 신호철 장로


“양화 나루터를 예수 정신으로 소생”

조선 말 ‘병인박해’로 목숨 잃은 선교사들이 묻힌 곳
외국인 선교사의 묘지 발굴·보존 작업 중요성 깨달아

양화진은 서울의 중심부에 있으나 도시의 시끌벅적함에서 비껴선 곳이다. 이 곳은 또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다. 조선 말 이곳에서 ‘병인박해’로 목숨을 잃은 선교사들을 애잔히 여겨 그들의 이름이 몸과 함께 묻히는 것을 거부한 사람이 있다. 양화 나루터를 예수의 마음으로 소생시킨 사람, 양화진 선교회장 신호철 장로(69·서교동 교회)를 지난 12일 만났다.

신 장로가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6년 전. 당시 무명의 선교사였던 기포드 여사에 대해 알고자 양화진에 들른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기포드 여사의 묘소가 100년이 넘도록 방치됐다는 사실을 접한 후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지 발굴·보존 작업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한 ‘뒤늦은’ 깨달음이 외국인 선교사 묘소를 알리는 데 촉매제로 작용했다.

지난해 5월 그는 양화진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누구나 외국인 선교사들에 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생각에 9월부터는 외국인 선교사 묘지 ‘알림이’로 직접 발벗고 나섰다. 또 10월엔 양화 나루터에 묻힌 선교사들의 자료를 묶어 ‘이땅에 떨어진 밀알들: 양화진 선교사’란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묘지 방문객들이 온몸으로 희생의 삶을 살아냈던 선교사들을 ‘만난’ 후 자신들의 인생방향을 고쳐나감을 볼 때 가슴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는 신 장로.

신 장로의 안내로 묘지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그에게 ‘양화진 선교사’로서 바람과 소망이 무엇인지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 존 헤론 선교사를 본받고 싶습니다. 고종황제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헤론은 5년 간 한국에 머물면서 남녀노소 구분없이 병든 사람 만 1000명을 치료해줬어요. 저 또한 국내 기독인구 천만명의 0.1%에 해당하는 만 1000명의 사람들에게 양화진이 어떤 곳인지, 외국인 선교사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또한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안내할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묘지가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참 신앙의 체험장’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소망을 겸손하게, 하지만 확고하게 말하는 신 장로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진한 향기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정수영기자 christey@empal.com





시리즈 8 - 충북 지역 첫 선교사 F.S. 밀러(F. Miller)
시리즈 7 - 고종의 법률 고문 그레이트하우스(Greathouse)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Ol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