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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자 이야기(21) 프랑스를 감자의 나라로 만든 파르망티에
이름
  신호철  작성일 : 2019-04-07 02:49:23  조회 : 133 


Q 프랑스를 감자의 나라로 만든   파르망티에(A. Parmentier) 농학자는  감자를 어떻게 보급하였는가?

A  유럽에서 감자가 주식이  되기 이전 프랑스에서는, 감자는 울퉁불퉁 못생기고,  돼지의 먹이에  어울리며 , 서민들이 생게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쩔수 없이 먹거나, 전쟁의 포로 들에게나 먹이는  천한 식품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귀부인들은 감자꽃이  성욕을 자극하는 최음제라는 오해도 있었다. 그러다가 1769년 이후 프랑스에는 대흉작(大凶作)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처하게 되었다. 이때   파르망티에(1737~1813)는 감자가 기근을 해소하는데 매우  좋은 식품이라는 것을 알리며 감자 재배를  권장하였다.  그리고  루이 16세 황제와 왕비에게  감자 꽃다발을  바쳐  감자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이 같은 근거는

첫째, 파르망티에는 프러시아 7년 전쟁 (1756~1763) 때에 종군(從軍)하다가 독일(프로이젠)의  포로가 되어 거의 감자만으로 끼니를 때우게 되었다. 이때  감자가 가진 식품의  장점을 체험하게되었다. 즉 감자를 많이 먹어 보았지만 부작용이 전혀 없었으며, 피로하거나 아프지도 않게하고, 영양가치가 있는 좋은 식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  그후 파르망티에는 감자연구를 계속하여 1769년  "기근의 참화를 줄일 수 있는 식량 연구" 라는 논문을 통하여, 감자는 전분을 쉽게 분리할 수 있고, 우수한 식품이라고 발표하여  그동안 감자를 천하게 여기고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셋째,  1785년 그는, 베르사유에서 열리는 루이 16세 생일 파티에 참석하여, 감자 꽃다발을 국왕에게 바치고, 왕비에게도 감자꽃을 가슴에 달아 주며, "이제 감자를 통하여 굶주림은 없게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로 인하여  많은 귀족들이 감자꽃을 선호(善好)하고, 감자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넷째,  루이 16세 황제는  프랑스에 감자의 보급을 위하여, 파르망티에 에게 감자 밭을 하사하면서  감자 보급에 노력하도록 하였다. 이에   파르망티에는  감자를 본격적으로 재배하면서, 감자에 관한 관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여러 병사들을  감자밭 주위를 둘러싸  삼엄하게 경비하게 하였다.   낮에는 삼엄하게  감시 하는척 하면서 감자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 밤에는 병사들을 모두 사라지게하여 주민들이 감자밭에 접근하여 이것을 가져다가  재배하게 하려는 은밀한 속셈이 있었다.  그리하여 프랑스에는  감자에 관한 편견이 사라지고, 재배 면적이 확산되어 감자가 주식(主食)으로 자리메김 하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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