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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귀츨라프 선교지 원산도에 관한 연구
이름
  신호철  작성일 : 2019-04-22 08:29:20  조회 : 240 

귀츨라프  선교지 원산도에 관한 연구
                                                                   신호철    김주창

I. 머리말
  귀츨라프 선교사는 1832년 린제이 함장이 이끄는 애머스트호라는 영국 배를 타고 통역관 직무를 수행하면서,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원산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그는 황해도(夢金浦)에서 정박하여 1박하고, 충청도 고대도 부근(後洋)에서 7월 24일 조선군관을 만나 검문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25일) 군관의 안내로  Gan-keang 만이란 곳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8월 12일 떠날 때까지 18박 19일을 머물며 선교활동을 하였다.   애머스트호가 조선에 도착한 주목적은 교역청원이었으며, 귀츨라프 선교사는 통역관 직무를 수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선교 사역을 한 특성이 있다.
  1) 조선 정부가 기독교 선교를 금지하는 시대적 배경하에서 한문으로 쓰여진 전도지를 만나는 관리와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2) 조선관리 한 사람(서기관)을 설득하여 한문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그 관리가 상관이 이를 알면 자기는 벌 받아 죽는다고 찢어버리자고 애원하여 그의 앞에서 통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 이 한글 주기도문은 후에 빛을 보지 못했다.
  3) 그로부터 53년 후인 1885년에 조선에 입국한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는 조선과 미국이 수호조약을 체결한 후에 조선을 선교 목적지로 파견된 정식 선교사이지만, 귀츨라프 선교사는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로 조선을 방문하여 조선 정부의 허가 없이 선교한 것이어서 선교지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또한 귀츨라프 선교지는 관련 문헌 및 기록의 수집과 해석에 따라 고대도라는 주장과 원산도라는 주장이 양립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확정하고  개신교 선교역사를 바로잡는데 목적을 두고 이 연구를 시행하였다.

III. 연구 자료
  귀츨라프 선교지 연구에 인용되는 자료는 충실한 연구를 위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연구 자료의 수집과 그 내용의 완전한 파악은 연구의 정확성과 질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연구 자료의 수집에 누락이 있던가 해석에 잘못이 있으면 신뢰도가 없거나 틀린 연구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1. 수집 가능한 연구 자료
  귀츨라프 선교지 연구에 필요하고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1) 조선 측의 기록으로 지방에서 보고된 문서를 편찬한 순조실록을 포함한 조선왕조실록과 그 근거가 되는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등
  2) 영국 측 기록으로 당사자가 직접 쓴 귀츨라프 일기 및 린제이보고서
  3) 원산도 및 고대도의 지도와 이 섬들의 지리, 역사 등 관련 연구자료
 위의 자료들은 연구자가 인용하는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어 연구자의 능력과 노력, 접근방법 등에 따라 연구결과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즉
  1) 한문에 약한 연구자들은 조선 측 자료를 인용하는데 한계성이 있다.
  2) 영문에 약한 연구자들은 당사자가 쓴 귀츨라프일기와 린제이보고서를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 불완전한 연구를 초래 할 수 있다.
  3) 한문이나 영문을 잘 알아도 그것이 기록된 배경과 사유를 자세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4) 모든 기록은 그 사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기준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현재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오류가 생기기 쉽다.
  5) 후속 연구일수록 그 연구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커진다. 이는 선행 연구결과를 활용할 수 있고, 연구 자료의 보충 인용과 번역 등이 갈수록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2. 조선 측 기록과 영국 측 기록의 비교
  귀츨라프 선교사의 선교지를 찾는데 필요한 관련 문헌으로는
1) 순조실록과 이와 관련된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등이 있다.     2) 영국 측의 귀츨라프 일기와 린제이 보고서 등이 있다.
  이들 문헌들을 서로 비교하면 조선 측 한문기록은 내용이 단순하며 정확하지 못하고 기록의 양도 적은데 반하여, 귀츨라프와 린제이의 영문기록은 자세하며 확실하고 기록의 양도 많다. 기록의 내용은 1832년 7월 25일부터 8월 12일까지 18박 19일 중에서  조선 측 기록은 3일에 한한다. 그러나 영국 측 기록은 10일이 될 만큼 차이가 크다.
  조선 측 문헌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충청지방관리가 몇 번 보고한 것을 종합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기록의 배경도 쇄국정책으로 외국인과의 접촉이 금지되던 시절이어서 외국인과 협의한 내용을 사실대로 보고했다가는 처벌을 받기 쉬운 억압 분위기 속에서 쓴 특성이 있다. 그 사례로 충청도 수군우후와 홍주목사는 린제이로부터 교역청원서와 국왕에게 올리는 예물을 격식을 갖추어 마을의 집에서 받았는데도, 해변에 두고 가서 할 수 없이 동장에게 맡겼다고 의금부에서 거짓 증언을 하였다. 그럼에도 귀츨라프 일행이 다녀간 후에 충청수사, 수군우후, 홍주목사는 일처리가 잘못 되었다고 의금부에서 심문 받고 처벌을 당했다. 따라서 조선 측 기록은 진실성이 적으며 이런 기록에 근거하여 귀츨라프 선교지를 찾는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그러나 영문 기록들은 거의 날마다 당사자들이 보고, 듣고, 행한 일들을 직접 기록한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영국 측 기록은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에서 낯선 조선에 대한 호기심까지 겹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들 조선과 영국 양측의 문헌을 비교하면 <표 2>와 같이 차이가 많고, 일자별 활동 기록도 <그림 1>과 같이 조선 측 기록은 매우 빈약하다.  

IV. 귀츨라프 선교지에 관한  자연 및 인문환경
   영국 측 기록에 따르면 그들이 정박한 Gan-keang 만이 위치한 섬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보고 듣고 알았다고 기록하였다.
  1) Gan-keang이라 불리는 만(灣)이 있다.
  2) 안전한 배의 정박 장소가 있다.
  3) 고관들을 만나 교역청원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
  4) 생활필수품을 구할 수 있다.
  5) 고관이 있는 마을, 즉 관청이 있다.  
  6) Gan-keang이 있는 섬은 소를 많이 기른다.
  7) 넓고 안전한 항구가 여러 개 있다.
  8) Gan-keang은 1등급 항구이다.
  9) 염소를 기를 수 있는 잡초가 우거진 들판이 있다.
  10) 수백 명의 주민들이 잠깐 동안 모일 수 있는 곳이다.
  이들 중 1)~4)는 조선 군관이 처음 만나 검문(問情) 할 때 알려준 것으로 거짓이나 조작이 있을 수 없는 내용이다. 5)~10)은 귀츨라프일기나 린제이 보고서에 기록된 것으로 그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사실이다.  

1. 간갱(Gan-keang)이라 불리는 만이 있는 곳
  조선 군관인 텡노(Teng-no)가 애머스트호를 처음 만나 검문할 때 “간갱이라는 만이 있는데 안전한 정박지이고, 고관들도 만나고, 교역 상담도 할 수 있고, 생필품을 구하기도 좋으니 그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하였다.(We will bring you to a bay called Gan-keang, where you may found safe anchorage, meet the mandarins adjust the affairs of your trade, and obtain provisions)
즉 만이 있다는 것은 해양 지리적 측면에서 지도로 살펴보면 곧 알게 된다.  원산도에는 만이 여러 개가 있으나, 고대도에는 ‘만’이 하나도 없으니 원산도가 선교지라는 것을 쉽게 알게 한다.    
2. 고관들을 만나 교역청원서를 제출할 관청이 있는 곳
  1832년 당시에 원산도에는 수군우후의 관청이 있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원산도에 국립 말목장이 세종 7년(1425)에 설치되었다 (세종실록, 1425. 음 7. 11. 兵曹啓 請於洪州元山島 以濟州體大 雌馬五十匹 雄馬六匹 入放息 所産兒馬 若體小有咎者 卽便捉出 令高巒島 萬戶專管考察 從之).
, 현종 때(1669)부터는 수군이 주둔하게 된 기록이 있다. (현종실록, 1669. 음 2. 3. 佐明又曰 元山島牧場 馬移置于大山串 而使忠淸水虞侯進駐于 元山以爲風和 待變之地 且於漕船上來時 使之點檢 上送便當矣 上從之).
  린제이 함장이 찾아가는 목적지는 교역 청원을 위한 관청이 있는 곳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고대도에는 관청이 없고, 원산도에는 관청이 있다는 것에서 귀츨라프 선교지가 확인된다. 실제로 린제이 함장은 관청이 있는 원산도에서 수군우후에게 국왕께 올리는 교역청원서와 예물을 공식적으로 전달하였다. 그리고 린제이 함장은 간갱에 처음 온 날에 고관과 관련하여 “우리는 고관들이 머물고 있다고 들은 큰 마을 가까이에 정박했다”고 기록했다.(We here anchored near a large village, in which we were told the mandarins were staying) 및(We here anchored near a large village, in which we were told the mandarins were staying).
또한 떠나기 전날 “오후에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마을로 고관들을 방문하였다”고 기록하여 고관이 있는 마을, 즉 관청이 있는 원산도에 정박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In the afternoon we visited the chiefs in the village, to take our leave).
  3. 소를 많이 기를 수 있는 넓은 들판이 있는 곳
  귀츨라프 선교사는 소와 관련하여 “소가 많이 있어서, 여기에 오는 배들은 항상 소고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As cattle are abundant, ships touching here can always be supplied with beef).
  원산도에는 풀과 물이 풍부하여 1425년(세종7)부터 1669년(현종10)까지 245년간 국립 말 목장이 있었으며, 넓은 들판이 있어 이곳에서 소를 많이 기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4. 좋은 항구가 위치하여 있는 곳
  귀츨라프 선교사는 항구와 관련하여 “넓고 안전한 항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가 정박한 간갱은 1등급 항구이다”라고 기록하여 항구에 대한 상태를 알려주고 있다. 항구의 등급은 해양 지리적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Though there are spacious and secure harbours, among which, Gan-keang, the place of our anchorage, holds the first rank).
  이는  넓고 안전한 항구가 여러 개 있고 간갱은 그 중에서 제일 좋은 항구라는 의미인데 고대도에는 만도 항구도 없었다.
  5. 염소를 기를 수 있는 목야지(牧野地)가 있는 곳
  귀츨라프 선교사는 목야지와 관련하여 “넓은 땅에 잡초가 우거져 있어 염소 기르기에 아주 좋은 목야지가 있는데도 염소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라고 기록하여 축산을 위한 토지 이용의 부적정한 상태를 지적하였다.(The greater part is overgrown with grass and herbs, and would furnish excellent pasturage for goats; but we saw not one.)  그러나 고대도의 경우는 좁은 면적일 뿐 아니라 지형도 대부분이 급경사의  산지와 바위 형성되어 가축을 기를 목야지가 없다.
  6. 수 백 명의 주민들이 잠깐동안 모일 수 있는 곳
  린제이 함장의 기록에 따르면 섬에서 세 번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기록하였다. 즉 1) 곤장을 맞게 된 병졸을 구해줄 때 200여명( A crowd of more than 200 people had assembled round the chiefs, who sat raised up among them in their open chairs, and appeared much troubled in mind. In the meanwhile Mr. Gutzlaff had written a few words saying that if these men were punished for our acts, we would instantly return to the ship and quit the country).
2) 식수를 퍼올 때, 수백 명(Although no village was near, yet a crowd of several hundred Coreans soon assembled; but instead of giving any annoyance, they cheerfully assisted in filling and passing the buckets to the boat, singing a monotonous song like the Lascars all the time.)
3) 씨감자를 심어줄 때 수백 명이 모였다고 했다.( We selected the most favourable spot of ground we could find, and planted more than a hundred. Several hundred natives stood round, gazing in astonishment.)
이는 마을이 1개인 고대도와 마을이 여러 개인 원산도를 비교하고, 인구의 규모를 감안하면 수백 명이 모일 수 있는 장소는 원산도이다.
이밖에도 귀츨라프 선교사는 7월 27일과 7월 30일, 섬을 걸어 다니다가  2개의 당집(Temple) 보았거나 방문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당집이란 섬 마을의 신앙 공동체에서 풍어, 마을의 평안, 주민의 안녕 등을 기원한 곳이다. 조사결과 고대도에는 당집이 오직 1개만 존재하였다. 그러나 원산도에는 진고지, 진촌, 짐말, 저두 등 여러 개의 당집이 존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당집이 1개뿐인 고대도보다  당집이 여러 개 존재하는 원산도의 경우가 선교지로서  타당성이 있다.

V. 고대도 선교지 주장 논리의 허구성
  고대도가 선교지라고 주장하는 리진호, 허호익, 오현기 등의 단행본에 나타나는 오류는 많이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순조실록을 오류가 없는 완전한 기록으로 보고, 부적정한 해석과 세심한 검증 절차 없이 간갱이 고대도 안항과 일치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2) 애머스트호가 조선에 온 목적과 관련하여 귀츨라프 일행이 고대도에 오래 머물 사유가 없었는데 이를 간과하고 고대도를 선교지로 보았다.
  3) 영국 측 기록에 나오는 “Gan-keang 만"을 ”Gan-keang"으로 착각하여  “만”이 없는 고대도를 선교지라고 오인하였다.
  이상의 세 가지 요인 중에서 단 하나 만이라도 깊이 있게 연구를 하였다면 고대도가 귀츨라프 선교지라는 주장은 나올 수 없었을 터는데 이는 졸속 연구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 순조실록에 대한 검증과 해석상의 문제점
  순조실록에는 “홍주 고대도 후양에 와서 정박했다”라는 기록과 “고대도 안항에 도착하여 정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고대도 선교지 주장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하였다. (순조실록, 1832. 음 7. 21. (1) 六月二十五日, 何國異樣三帆竹船一隻, 來泊於洪州古代島後洋, (2) 本年六月二十六日酉時量, 異樣船一隻, 到泊於本州古代島安港)   그러나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내박(來泊)과 도박(到泊)은 “와서 정박했다”는 뜻이며, 상륙했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그러므로 정박했다는 기록만 가지고 선교한 장소라고 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정박과 상륙의 의미를 구분하여 보면 고대도가 선교지라는 주장은 무리이다.
  둘째. 고대도 후양이란 고대도 뒤에 있는 넓은 바다의 개념이다. 따라서 ‘고대도 후양’과 ‘고대도’의 지리적 위치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 기록을 근거로 고대도가 선교지라고 지칭하는 것은 오류이다.
  셋째, “고대도 안항”은 고대도에 있는 항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지명이 아니고 지어낸 이름으로 밝혀졌다. 안항의 지명 유래는 순조실록 자문이며 이 자문은 중국에 보낸 외교문서로  1) 외국 선박이 다녀간 것을 대국(중국)에 보고하지 않았다가 중국이 알고 책망하면 곤란하니 후환을 없애기 위해 “자문을 찬출(撰出-시가나 문장을 지어내는 것)하여 보내자“고 한 것에 비롯되었다.(순조실록 자문, 1832. 음 7. 21. 閩越、廣等處地方 之商船往來, 歲不下六七十隻云, 則今此來泊我國之事情, 或不無轉通大國之慮, 不可不自我國, 先發以防後患。令槐院, 枚擧事實, 撰出咨文, 從便入送于 禮部.)
  2) 조선의 다른 어떤 문서와 지도에도 “고대도 안항”이란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3) 여의도의 1/3 크기(92ha)로 급경사 산지가 대부분인 고대도에서 안항이란 이름의 항구 또는 마을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2. 애머스트호가 조선에 온 목적을 고려하지 않은 문제점
  귀츨라프 선교지가 고대도인가 원산도인가를 확인하려면 먼저 애머스트호의 항해 목적과 귀츨라프 선교사에게 부여된 직무를 고려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애머스트호는 린제이 함장 책임하에 교역 청원을 위하여 약 6개월에 걸쳐 중국 황해연안, 조선, 오키나와 등을 방문하였다. 이때 귀츨라프 선교사는 린제이 함장을 도우면서 통역 및 의료 담당으로 승선하여, 교역과 관련된 기착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였다.    
  그러므로 선교지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고, 애머스트호의 항해 목적에 따라 선교 장소가 결정되었다. 따라서 고대도나 원산도가 선교지가 되려면 그곳에 가는 것이 교역 업무와 어떻게 관련이 되는가를 검토하여야 한다.
  린제이 함장은 중국 황해 연안의 항구는 물론이고 황해도 몽금포에 도착해서도 교역청원서를 제출하려고 관청을 찾아가려 했다. 이는 애머스트호의 목적지가 고관이 있는 관청 소재지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We were desirous to barter for some cattle, which were abundant here, and were inquisitive to know the residence of a great mandarin, to whom we might hand a petition addressed to his majesty).
그러므로 관청이 없는 고대도에서 선교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3. “Gan-keang 만”에서 “만”을 떼어내고 무시한 문제점
  허호익과 오현기은 고대도가 선교지라고 정해놓고 “Gan-keang은 고대도에 있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Gan-keang은 만과 연관되기 때문에 “Gan-keang 만은 고대도에 있다”고 쓰는 것이 맞는다. 그러나 고대도에는 만이 없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틀린 것을 알 수 있다. “만”이란 글자를 떼어내고 “Gan-keang은 고대도에 있다”라고 하면 그것이 틀린 것인지를 알기 어렵게 된다. 이는 고의로 한 것은 아니겠지만 “Gan-keang 만”을 “Gan-keang"으로 바꾸어 후속 연구자들과 독자들의 판단력을 흐리게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하였다. 모든 연구에 있어 연구의 결론은 개방된 논의 결과에서 얻어내야지, 미리 결론부터 정해놓고 여기에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들을 맞추어 나가다보면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4. 고대도 선교지 주장 논리의 구체적 사례
  1) 리진호의 고대도 선교지 주장 논리와 평론
  리진호는 “귀츨라프 선교사가 원산도에 상륙하였다는 것은 프랑스 신부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1874)』에 기록되어 있고 이를 백낙준 박사가 그의 저서 『한국개신교사(1973)』에 소개하였다. 순조실록에 홍주목사가 국왕에게 보고한 바에 의하면 고대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대목에 한하여 달레의 기록은 신빙성이 적다”고 하며 고대도가 선교지라고 기록하였다.(리진호,『귀츨라프와 고대도』 1988)
  이것은 순조실록의 기록은 무조건 믿고, 샤를르 달레의 기록은 부정하면서 그 부정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주장이 되었다. 새로운 학설이나 주장에는 이전의 학설이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순조실록에서는 “고대도 뒤 바다에 와서 정박했다”고 했을 뿐 “고대도에 상륙했다”는 기록이 없는 데, 상륙하지도 아니하고 고대도에서 선교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상륙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고대도가 선교지라는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2) 허호익의 고대도 선교지 주장 논리와 평론
  허호익은 “귀츨라프 일행이 1832년 7월 25일부터 8월 11일까지 정박하여 Gan-keang으로 알고 있었던 곳은 당시의 행정구역상 고대도 안항이 분명하다”고 기록하였다.( 허호익, 『귀츨라프의 생애와 조선선교 활동』 2009)   . 그러나 고대도 안항은 실존지명이 아닌 지어낸 가상의 지명이기 때문에 선교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고로 고대도 주장은 허공에 뜰 수밖에 없다. 지리적으로 보아도 여의도 1/3 크기의 작은 면적의 만이 없는 고대도에 안항이란 항구나 마을이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귀츨라프 일행이 18박 19일 동안 머물렀던 ‘Gan-keang"이 고대도에 위치해야 하는 이유와 원산도에 위치해야 하는 이유를 검토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귀츨라프 선교사와 린제이 함장의 기록을 소홀히 하여 Gan-keang 만을 Gan-keang으로 보아 오류가 생길 여지를 처음부터 만들었다.  허호익은 또 린제이 함장의 보고서를 번역하면서 “우리는 고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들은 큰 마을 가까운 곳에 정박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원문의 뜻은  “기다리고 있다”가 아니라 “머물러 있다 또는 살고 있다”로 번역해야 했다.(We here anchored near a large village, in which we were told the mandarins were staying).
  3) 오현기의 고대도 선교지 주장 논리와 평론
  오현기는 “조선인들이 안전한 곳이라고 말했던 장소이자 귀츨라프가 강기항(Gan-kiang)이라고 지칭한 곳은 고대도 안항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오현기『굿모닝, 귀츨라프』  2014),   그러나 고대도 안항은 지어낸 가상의 지명이기 때문에  타당성이 없는 오류이다.
  또 오현기는 “귀츨라프 선교사가 ‘안전한 기항지’를 Gan-keang으로 표현했는데 이 단어는 지명을 나타내는 고유명사가 아닌 안항의 성격적 특성을 보통명사화한 단어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 ,
그런데 Gan-keang을 처음으로 알려준 텡노라는 군관은 "우리가 당신들을 Gan-keang이라 불리는 만으로 데리고 가겠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Gan-keang이라 불리는 만”은 고유명사가 될 수밖에 없다.( We will bring you to a bay called Gan-keang, where you may find safe anchorage - - -).
“불리는”의 의미인 “called”가 지명 등의 이름 앞에 붙으면 그 이름은 보통명사가 될 수 없고 고유명사가 되어야 한다.  

VI. 원산도와 고대도의 지리적 여건 비교
원산도의 면적은 1,028ha로 고대도의 92ha보다 11배 이상 크다. 그리고 고대도는 여의도 면적의 1/3 정도로 좁고 경사가 급한 산지가 대부분이다. 한편 원산도에는 풍파로부터 보호되는 좋은 만이 있지만 고대도에는 선박이 풍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만(灣)이 없고 항구로 적합한 곳도 없다.
  지도에서 살펴보면 고대도에는 만이 없고, 원산도에는 만이 여러 곳 있다. 또한 고대도에는 마을이 하나이지만 원산도에는 초전(草箭), 진촌(鎭村), 사창(射倉), 구치(鳩峙), 선촌(船村), 진곶지(鎭串之), 점촌(店村), 저두(猪頭) 등 여러 마을이 있다. 특히 원산도 동쪽 해안의 점촌 부근에는  Gan-keang과 비슷한 발음의 개갱 마을 즉 개갱촌이 위치하여 있다.  
  역사적으로 원산도에는 세종 7년(1425)에 국립 말 목장이 설치되었으며,  현종 때(1669)부터 수군이 주둔한 기록이 있지만 고대도에는 이 같은 역사기록을 찾을 수 없다.
  영국 측의 Gan-keang에 대한 기록에 근거하여 원산도와 고대도 두 섬의 지리, 자연, 인문상황을 <표 3>을 통하여 비교 검토하여 보면 어느 섬에서 18박 19일 동안 정박하고 상륙하며 선교활동을 하였는지  쉽게 판단 할 수 있다.

VII. 맺음말
  귀츨라프 선교사는 1832년에 조선을 방문한 개신교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로, 그의 선교 활동은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어디서 선교를 했는지? 아직도 확정조차 못하고 원산도와 고대도가 함께 선교지로 거론되고 있으며 연구자들도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또한  양쪽에 기념물이 설치되고, 보령시는 귀츨라프 선교사를 기념하는 사업이나 관광개발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의 왜곡으로 나타나고 있다.
  귀츨라프 선교지에 대하여 연구자들이나 학자들 간에 논쟁의 대상으로 있을 수는 있지만, 이것이 현지에 기념물들이 설치된다면 그 어느 한쪽은 거짓이 되어 기독교 역사에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므로 확실한 선교지를 찾아내는 연구는 대단히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귀츨라프 선교사 일행이 조선에 온 목적을 재확인하고, 조선과 영국 측의 문헌 기록을 검토하며, 관련 문헌에 기록된 내용들을 원산도와 고대도의 당시 상황들과 비교하면서 귀납적(歸納的) 방법을 통하여 귀츨라프 선교사의 선교지를 원산도로 최종 확정하였다.  
  고대도 선교지 주장자들은 순조실록에 “고대도 안항에 와서 정박했다(到泊於本州古代島安港)”는 기록을 근거로 귀츨라프 선교사의 선교지가 고대도라고 하지만, 고대도 안항은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에서 지어낸  단 한번 나오는 가상의 지명임을 확인하고 고대도 주장의 근거가 오류임을 증명하였다.
  고대도를 귀츨라프 선교지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1) 귀츨라프 일행이 조선에 온 목적을 깊이 있게 살펴보지 않았으며, 2) 관련 문헌에 기록된 내용들을 자세하게 검증하지 않았다. 3) 그리고 기록으로 제시된 귀츨라프 선교지의 지리적 자연 환경 등 제반 상황들을 현지 상황과 비교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개신교 선교역사 정립에 혼란을 초래하는 과오를 남겼다.  
  따라서 아직도 귀츨라프 선교사의 선교지가 고대도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을 원산도로 바로잡아 개신교 선교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모든 기독교계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순조실록 (1832. 음 7. 21)
2) Karl F. A. Gutzlaff, 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981, 1982, & 1983, with Notices Siam, Corea, and the Loo-choo Islands (Frederik Westly and A. H. Davis, Stationers' Hall Court, 1834),  
3) Hugh H. Lindsay, 1833, Report of Proceedings on a Voyage to the Northern Ports of China in the Ship Lord Amherst (London, B. Fellowes, Ludgate Street, 1833)
4)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
5) 리진호, 『귀츨라프와 고대도』 (// , 1988)
6) 신호철, 『귀츨라프 행전』 (양화진, 2009)
7) 허호익, 『귀츨라프의 생애와 조선 선교활동』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9)
8) 오현기, 『굿모닝, 귀츨라프』 (북코리아, 2014)
9) 신호철, 김주창, 『원산도의 귀츨라프 발자취』 (양화진, 2017)
10) 신호철, 김주창, 『귀츨라프 선교사와 원산도 Q&A』 (양화진, 2018)


                                                       Abstract
A Study for the Mission Field by Rev. K. F. A. Gutzlaff, the First Protestant Missionary in Korea
                                    Shin, Ho-Chul   Kim, Ju-Chang
  Born in 1803 in Germany, Rev. Gutzlaff studied at the Berlin Seminary, became a pastor and missionary to the Netherlands Mission, arrived in Indonesia in January 1827 and began his missionary work in Jakarta. He moved to Bangkok, Thailand as a member of the London Mission in June 1828, then left from Bangkok in June 1831 and arrived at Macao in December 1831 as a Chinese member of London Mission.
  He, as a translator and medical worker, embarked on the Lord Amherst, an Eglish merchant ship, and traveled to the Yellow Sea coastal cities of China and to Monggeumpo in Hwanghae province of Korea and anchored one night and two days. Later, he arrived at an island in the west coast of Chungcheong province of Korea. After staying for 19 days in the island with a bay called Gan-keang, he returned to Macau through Okinawa after a long trip of 192 days.
  During his stay in Gan-keang, Rev. Gutzlaff helped Mr. Lindsay with the trade petition service, and spread the gospel documents to the people, put the Bible and the telescope in a gift to the king, distributed medicine to the cold patients, and translated the Apostles' Creed in Chinese into Korean, and hoped that good days would come to Korea.
  Even now, more than 180 years after the missionary's visit to Korea, the place he visited and evangelized was not clearly clarified, because there are two different opinions among the relevant scholars and researchers, one for Godaedo and the other for Wonsando. This brings confusion in the history of Korean Christian missi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proper mission field of Rev. Gutzlaff by comparing Godaedo and Wonsando islands. The arguments may be possible, but the fact that each of the monuments is installed in two places is a real distortion of Korean Christian history, and it becomes a shame of Christianity and harms the honor of our country.  
  Three questions were asked. 1) What is the purpose of the visit to Korea by the Lord Amherst? 2) What is the authenticity of the relevant documentary records? 3) Where is the island consistent with the geographical, historical, and human context?
  As a result of this study, it was confirmed that Wonsando is the real mission field of Gutzlaff mission, but there were many memorials of Rev. Gutzlaff in Godaedo, where he never stepped foot in that place. It is urgent to correct it and preserve the truthful history of Christian mission in Korea.
     Key-words: Karl F. A. Gutzlaff, Hugh H. Lindsay, Lord Amherst,    
            Gan-keang, Wonsando, Godaedo, Mission field,
            First Protestant Missionary in Korea,  Annals of Su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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